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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나요법의 과거와 현재
추나요법의 과거와 현재
되돌아 본 20년 /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정영목 원장 (척추신경추나의학회) : 젊은 결혼의 앞둔 청년이 골반이 많이 틀어져서 다리길이가 많이 차이가 나서 신부측에서 걸음을 전다고 결혼이 무산될 그런 어려움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공부하던 현장에서 다리길이가 좋아지는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서는 그날밤은 흥분해서 잠을 잘 못잤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들이 있구나, 이거 정말 한번 공부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추나학에 들어와서.. 推拏(추나) 유한길 원장 (척추신경추나의학회) : 추나학회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정식 대한한의학회 정식 분과학회로 출범했습니다. 처음 추나를 시작할때는 지금과 같이 학문적인 바탕이 없는 바탕에서 소위 말하는 운동하는 사람들, 돌팔이들 이런 분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거를 따라가는 학문이라고 말리는 분들이 많았죠. 척추교정은 돌팔이나 하는 짓인데 왜 한의사가 그런걸 따라하냐는 그런 얘기들이 많았죠. 이종진 원장 (척추신경추나의학회) : 양방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사기꾼이라는 말까지 많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 척추질환이었어요. 우리 한의학으로 침맞고 약먹고 척추가 많이 좋아지다가도 어쩌다 환자가 사진을 찍어 양방에서 디스크다 하면 그때부터 우리 한의학에서 그동안 치료한거는 아무것도 아니고 꼭 수술을 해야되는 그런 세상이었거든요. 이러한 이유때문이 우리가 척추질환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학회가 필요하다고 해서 학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설립 / 1991년 12월 15일 10년 전에는 워낙 여건이 안좋다 보니까 학회를 결성하기는 했는데 사실 학회를 운영할 돈이 없었죠. 조기용 원장 (척추신경추나의학회) : 초기에는 기법이 그렇게 많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미나를 열고 외국에서 전문가를 초청하고 우리가 또 외국으로 세미나를 나가고 책도 구입을 하고 초창기에는 다들 어렵다보니 책 하나 구입해도 공동으로 보고 그 당시에는 열정으로 모여서 구미선산 1명 대구에 2명 부산 2명 대전 2명 그 사람들이 일주일에 2번 만나고, 또 일요일에 만나고 그런식으로 아주 강행군이었죠. 12시 넘어가는건 다반사고, 새벽은 새벽대로 가서 공부를 해야되고, 갑자기 핑 돌아서 이러다가 쓰러지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죠. 세미나 끝나고 고속도로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심장이 딱 멎는 걸 느꼈어요. 순간 죽을때 주마등이 지나간다는 걸 느꼈어요. 내 어릴때부터 지나온 순간들이 순식간에 필름 돌아가듯이 뇌리에 스치면서 심장이 멎으면서 운전하는데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생활이었죠. 환자도 너무 많았고. 험난했던 추가 복원 (척추신경추나의학회) 그때는 무슨일이 있어도 조그마한 정보를 얻으려면 모든 일을 제치고 모여야 되었죠. 자료 하나, 테크닉 하나 배운다고 팀을 결정해서 한 팀당 2천만원씩 10주간 교육으로 2개 3개씩 듣고. 배운것을 실습하고 그 다음날 환자에게 치료를 하고 했을때 치료 효과가 배운대로 그대로 나타날때는 환자가 통증에서 벗어나고 즐거워 할때 기분좋아할 때 기쁘죠. 배우는게 너무 즐겁고 힘들걸 몰랐죠. 촛불제전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수료식때 불을 끄고 촛불을 들고 자기를 태워서 열정적으로 한의학을 위해서 절규했던가, 몸부림쳤던가 이런 내용이 절절이 일반 한의가 특히 추나 초창기 멤버가 느끼는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같은 저절로 그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가슴 뭉클하면서 눈물나는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촛불제전 이 땅위에 태어난 많은 인간 속에서 나는 의사의 길을 걷고자 결심했다. 자의반 타의반 운명의 흐름 속에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동안 힘들었던 고난의 세월들을 돌이켜보며 지금의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어른의 품성을 닦고 학문을 연구하며 아픔 속에서 고통을 받는 자들을 나는 얼마나 이해하려 하였던가. 나는 그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불사르면 헌신을 다 하였다고 의사로서 떳떳하게 말할수 있는가. 육신의 필요와 생활속 안락함에 젖어 절박한 현실 속에서 동료에 대한 애정을 느끼면 함께 공부하여 서로를 개발하게하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 무관심속에서의 쓴 웃음이 아니 진정으로 두 손을 맞잡고 서로 격려하며 하나를 배워서 둘을 나누어 주는 뜨거운 애정을 쏟게하는 친구가 나에게는 있었는가. 달콤한 이야기로 나의 어리석은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이웃대신 독설로서 나의 눈과 귀를 열게 하여 진실을 깨우치게 하는 친구를 나는 어떻게 대하였는가. 이제 나에게 어떤 기회가 있어 훈련 받은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케하고 나와 나의 형제들을 윤택하게 할 수 있겠는가. 5천년 민족혼이 담겨진 우리의 한의학이 수모를 받으면 다시 나의 일부를 뺏어가는 아픔을 겪었을 때 나는 얼마나 화했는가. 내가 해야할 작은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우리는 뭉쳤다. 추나학을 통하여 우리는 어떠한 편파적인 편견이 없이 오직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뭉쳤다. 이제 우리가 서로를 이끌어 가며 조직을 위한 나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가 왔다. 명실공히 존경 받는 한의사가 될 것을 서약하노라. 이 한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휘하는 촛불처럼 나 스스로를 태울 것을 약속하노라. 추나의학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있어서 다들 추나학회 회원들 임원들 열심히 노력하셨지만 신준식 회장님이 안계셨다면 있을 수가 없죠. 신회장님 계심으로 해서 명실공히 한의학의 중추적인 학회로 임상의 기법으로 미래 한의학의 뒷받침해주는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추나, 끝없는 배움의 길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처음에는 1,2년 하면 되겠지 했는데, 하다보니까 10년이 되도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도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할수 있을지 자신은 없는데 내 생에 황금기였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닌 에너지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의 다짐 (신준식 박사) 먼 훗날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다시 이 자료를 보면서 그땐 그랬었지. 10년 전만 해도 열정이 많았었지. 60대도 청년과 같은 열정이 있었지. 30년 후에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 기록을 남깁니다. 95세 100세 때 제가 다시 이 자료를 보면서 '맞아, 저 때가 내 황금기였고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었어' 그 얘길 꼭 할겁니다. 감사합니다. 척추신경추나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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